“인천新도시, 神話가 되려면 두바이와는 반대로 하라”
⊙ 33세 인천시 국장이 홀로 新도시 기획… ‘한국 지도를 바꾼 남자’
⊙ “당시 인천은 매력은 고사하고 미래를 차단당한 枯死 직전의 도시”
⊙ 新도시 계획안 처음 본 기자들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냐…”
⊙ 홍콩ㆍ암스테르담ㆍ싱가포르 벤치마킹해 인천공항과 신도시 기획
⊙ 도시계획 전문가 입장에서 본 세종市는 ‘허구’
김정우 월간조선 기자 (hgu@chosun.com)
취재지원 : 조은정 月刊朝鮮 인턴기자
1986년 인천직할시장 집무실, 시장 앞에 선 33세 도시계획국장은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아무것도 없는 인천 앞바다 섬과 섬 사이를 메워 국제적 규모의 공항과 관광단지, 그리고 신도시를 건설한다는 내용의 병풍식 브리핑차트가 그의 옆에 놓여 있었다. 잠시 후,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킨 그가 보고를 시작했다.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 바다를 매립해….”
당시 영종도는 갯벌이 끝없이 펼쳐진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외딴 섬이었다. 그곳에 짓겠다는 신(新)공항은 이미 충북 청주로 부지가 결정돼 상당 부분 토지 매입이 끝난 상태였다. 인천과 경기도는 수도권 개발 억제 정책의 중점 대상이었고, 섬들은 북한 대포의 사정거리 안에 있다는 이유로 인프라가 열악했다. 게다가 사업의 중심 무대인 영종도와 용유도는 인천시가 아닌 경기도의 행정구역이었다.
풋내기 국장의 말도 안되는 보고를 끝까지 들은 시장이 말도 안되는 대답을 내놓았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청사진이다. 청와대에 가서 보고를 드려 보는 것이 좋겠다.”
‘말도 안된다던’ 이 보고는 20년 후 현실이 됐다. 소설 같던 계획안은 100조원 규모의 초대형 프로젝트로 변신했다. 당시 송도신도시 계획을 보고받은 이는 박배근(朴培根) 전(前) 시장, 보고 당사자인 도시계획국장은 박연수(朴演守) 현(現) 소방방재청장이었다.
‘미래를 차단당한 도시’
“인천국제공항 건설이 1986년 계획되고 추진됐다는 것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다. 그 모든 움직임의 중심에 박연수 박사가 있었다. 1980년대 중반 당시 33세에 불과했던 지방정부 국장이 이 국가적이고 역사적인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추진해 성공적으로 실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남덕우(南悳祐) 전 총리가 박연수 청장에 대해 회고한 내용이다.
강동석(姜東錫) 전 건설교통부 장관은 “서른을 갓 넘긴 지방공무원이 국가와 지역의 장래를 위해 이처럼 대담한 구상과 계획을 했다는 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면서 “그의 꿈과 구상이 실현돼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인천의 발전상을 볼 때, 시대를 앞서가는 한 공직자의 혜안과 집념이 역사를 바꾸는 데 얼마나 크게 기여하는지 실감할 수 있다”고 했다.
“소방방재청장 임명 후 첫 대외행사가 인천대교 개통식 참석이었습니다. 20여 년 전 머릿속으로만 그렸던 그 위용을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순간 눈물이 핑 돌더군요.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단 한 장의 사진으로 찍은 느낌이었습니다.”
2009년 12월 4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사무실에서 만난 박연수 청장은 2009년 10월 16일에 열린 인천대교 개통식을 회상하는 것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인천대교는 송도신도시를 국제 비즈니스 중심도시로 만들기 위해 박 청장이 도시계획국장 시절 최초 계획 단계부터 구상해 추진한 프로젝트다.
박 청장은 2주 후인 10월 30일에 한 번 더 눈물을 흘려야 했다.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탄 오사카행(行) 비행기에서 창 아래로 펼쳐진 인천대교의 장관을 보고 나서다.
“인천대교는 한마디로 ‘세계최고’입니다. 바다와 공항, 그리고 신도시를 연결하는 의미와 규모를 모두 갖춘 세계적인 교량이에요. 앞으로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가장 먼저 바라보고 평가할 잣대 역할을 인천대교가 감당할 것이라 생각하니 두근거리는 마음에 눈물이 나더군요.”
25년 전엔 꿈에도조차 없던 일이었다. 1985년 6월, 7년간의 경남도청 근무를 마치고 인천시 도시계획 행정을 맡게 된 박연수 과장의 눈에 비친 인천은 ‘미래를 차단당한 도시’였다. 서울의 해상 관문인 인천은 근대 문물의 도입 통로였고, 일찍이 공업화가 이뤄진 곳이었다. 하지만 서울과 가까운 임해(臨海)도시란 이유로 돌아온 것은 혜택이 아니라 규제였다.
“당시 인천이 가진 매력적인 요소가 여럿 보였습니다. 우선 한국의 관문으로 불리는 지리적 입지가 있었고, 좀 더 시야를 넓히면 한·중·일(韓中日) 3국의 중심에 위치한 동북아 허브로서의 모양새가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반대였죠. 매력은 고사하고, 고사(枯死)해 가는 도시였습니다.”
포스트 홍콩을 겨냥하다

인천을 고사시킨 가장 큰 원인은 수도권 억제정책이었다. 도시발전의 주축을 이뤘던 제조업이 장기간 중단된 인프라 구축으로 인해 인천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1987년 한국도시연감에 따르면, 인천의 2차 산업 비중은 근로자 수 기준으로 77.2%였다. 1986년 경제기획원의 지역별 도ㆍ소매업 현황 통계는 인천의 인구 대비 사업체 수와 판매액이 5개 직할시 중 최저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경인(京仁) 간 1일 교통인구는 50만명에 육박했다. 한마디로 인천은 생활권의 독립도 이루지 못한 서울의 부속 공단 역할에 머무르는 ‘의존의 도시’였다. 박 청장의 설명이다.
“명색이 한국의 대표 항구도시인데 1주일이 가도 배 한 척이 들어오지 않는 겁니다. 인구 130만명의 4대 직할시에 들어오는 도로가 4차선의 고속도로와 국도, 2차선 산업도로로 3개밖에 없었죠. 요즘은 인구 10만명이 안되는 군 소재지도 진입도로가 10개는 넘을 겁니다. 당시 인천의 실상에서 미국 자동차 산업의 상징이었던 디트로이트의 몰락이 연상됐습니다. 디트로이트는 도시 경영자들의 대를 이은 무능과 무책임 때문에 몰락했죠.”
그가 생각한 대책은 명확했다. 정부에 사정하고 반발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명운(命運)이 걸린 프로젝트를 전략적으로 진행하는 것이었다. ‘나라가 살 길’과 일치하는 ‘인천이 살 길’을 찾아야만 했다. 20년 뒤를 내다보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해 추진하는 것이 그의 전략이었다.
“일단 동북아로 시선을 넓...
계속...
朴演守
⊙ 1953년 전북 정읍 출생.
⊙ 성남고ㆍ고려대 토목공학과 졸업. 연세대 대학원 도시계획학 석ㆍ박사, 美 조지타운대 객원연구원.
⊙ 제14회 기술고등고시 합격, 인천시 도시계획국장ㆍ재무국장, 내무부 방재계획과장, 행자부
월드컵문화시민운동추진협의회 운영국장ㆍ지방혁신인력개발원 원장, 인천시 기획관리실장,
소방방재청 차장, 인천대 대학원 겸임교수 등 역임.
⊙ 現 소방방재청 청장.
월간조선 2010년 2월호 (기사 全文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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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세 인천시 국장이 홀로 新도시 기획… ‘한국 지도를 바꾼 남자’
⊙ “당시 인천은 매력은 고사하고 미래를 차단당한 枯死 직전의 도시”
⊙ 新도시 계획안 처음 본 기자들 “정신이 온전한 사람이냐…”
⊙ 홍콩ㆍ암스테르담ㆍ싱가포르 벤치마킹해 인천공항과 신도시 기획
⊙ 도시계획 전문가 입장에서 본 세종市는 ‘허구’
김정우 월간조선 기자 (hgu@chosun.com)
취재지원 : 조은정 月刊朝鮮 인턴기자
“영종도와 용유도 사이 바다를 매립해….”
당시 영종도는 갯벌이 끝없이 펼쳐진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외딴 섬이었다. 그곳에 짓겠다는 신(新)공항은 이미 충북 청주로 부지가 결정돼 상당 부분 토지 매입이 끝난 상태였다. 인천과 경기도는 수도권 개발 억제 정책의 중점 대상이었고, 섬들은 북한 대포의 사정거리 안에 있다는 이유로 인프라가 열악했다. 게다가 사업의 중심 무대인 영종도와 용유도는 인천시가 아닌 경기도의 행정구역이었다.
풋내기 국장의 말도 안되는 보고를 끝까지 들은 시장이 말도 안되는 대답을 내놓았다.
“충분히 공감이 가는 청사진이다. 청와대에 가서 보고를 드려 보는 것이 좋겠다.”
‘말도 안된다던’ 이 보고는 20년 후 현실이 됐다. 소설 같던 계획안은 100조원 규모의 초대형 프로젝트로 변신했다. 당시 송도신도시 계획을 보고받은 이는 박배근(朴培根) 전(前) 시장, 보고 당사자인 도시계획국장은 박연수(朴演守) 현(現) 소방방재청장이었다.
‘미래를 차단당한 도시’
“인천국제공항 건설이 1986년 계획되고 추진됐다는 것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었다. 그 모든 움직임의 중심에 박연수 박사가 있었다. 1980년대 중반 당시 33세에 불과했던 지방정부 국장이 이 국가적이고 역사적인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추진해 성공적으로 실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었다.” 남덕우(南悳祐) 전 총리가 박연수 청장에 대해 회고한 내용이다.
강동석(姜東錫) 전 건설교통부 장관은 “서른을 갓 넘긴 지방공무원이 국가와 지역의 장래를 위해 이처럼 대담한 구상과 계획을 했다는 데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면서 “그의 꿈과 구상이 실현돼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인천의 발전상을 볼 때, 시대를 앞서가는 한 공직자의 혜안과 집념이 역사를 바꾸는 데 얼마나 크게 기여하는지 실감할 수 있다”고 했다.
“소방방재청장 임명 후 첫 대외행사가 인천대교 개통식 참석이었습니다. 20여 년 전 머릿속으로만 그렸던 그 위용을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순간 눈물이 핑 돌더군요. 대한민국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단 한 장의 사진으로 찍은 느낌이었습니다.”
2009년 12월 4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 사무실에서 만난 박연수 청장은 2009년 10월 16일에 열린 인천대교 개통식을 회상하는 것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인천대교는 송도신도시를 국제 비즈니스 중심도시로 만들기 위해 박 청장이 도시계획국장 시절 최초 계획 단계부터 구상해 추진한 프로젝트다.
박 청장은 2주 후인 10월 30일에 한 번 더 눈물을 흘려야 했다.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탄 오사카행(行) 비행기에서 창 아래로 펼쳐진 인천대교의 장관을 보고 나서다.
“인천대교는 한마디로 ‘세계최고’입니다. 바다와 공항, 그리고 신도시를 연결하는 의미와 규모를 모두 갖춘 세계적인 교량이에요. 앞으로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이 가장 먼저 바라보고 평가할 잣대 역할을 인천대교가 감당할 것이라 생각하니 두근거리는 마음에 눈물이 나더군요.”
25년 전엔 꿈에도조차 없던 일이었다. 1985년 6월, 7년간의 경남도청 근무를 마치고 인천시 도시계획 행정을 맡게 된 박연수 과장의 눈에 비친 인천은 ‘미래를 차단당한 도시’였다. 서울의 해상 관문인 인천은 근대 문물의 도입 통로였고, 일찍이 공업화가 이뤄진 곳이었다. 하지만 서울과 가까운 임해(臨海)도시란 이유로 돌아온 것은 혜택이 아니라 규제였다.
“당시 인천이 가진 매력적인 요소가 여럿 보였습니다. 우선 한국의 관문으로 불리는 지리적 입지가 있었고, 좀 더 시야를 넓히면 한·중·일(韓中日) 3국의 중심에 위치한 동북아 허브로서의 모양새가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반대였죠. 매력은 고사하고, 고사(枯死)해 가는 도시였습니다.”
포스트 홍콩을 겨냥하다

인천을 고사시킨 가장 큰 원인은 수도권 억제정책이었다. 도시발전의 주축을 이뤘던 제조업이 장기간 중단된 인프라 구축으로 인해 인천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1987년 한국도시연감에 따르면, 인천의 2차 산업 비중은 근로자 수 기준으로 77.2%였다. 1986년 경제기획원의 지역별 도ㆍ소매업 현황 통계는 인천의 인구 대비 사업체 수와 판매액이 5개 직할시 중 최저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경인(京仁) 간 1일 교통인구는 50만명에 육박했다. 한마디로 인천은 생활권의 독립도 이루지 못한 서울의 부속 공단 역할에 머무르는 ‘의존의 도시’였다. 박 청장의 설명이다.
“명색이 한국의 대표 항구도시인데 1주일이 가도 배 한 척이 들어오지 않는 겁니다. 인구 130만명의 4대 직할시에 들어오는 도로가 4차선의 고속도로와 국도, 2차선 산업도로로 3개밖에 없었죠. 요즘은 인구 10만명이 안되는 군 소재지도 진입도로가 10개는 넘을 겁니다. 당시 인천의 실상에서 미국 자동차 산업의 상징이었던 디트로이트의 몰락이 연상됐습니다. 디트로이트는 도시 경영자들의 대를 이은 무능과 무책임 때문에 몰락했죠.”
그가 생각한 대책은 명확했다. 정부에 사정하고 반발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명운(命運)이 걸린 프로젝트를 전략적으로 진행하는 것이었다. ‘나라가 살 길’과 일치하는 ‘인천이 살 길’을 찾아야만 했다. 20년 뒤를 내다보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발굴해 추진하는 것이 그의 전략이었다.
“일단 동북아로 시선을 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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朴演守
⊙ 1953년 전북 정읍 출생.
⊙ 성남고ㆍ고려대 토목공학과 졸업. 연세대 대학원 도시계획학 석ㆍ박사, 美 조지타운대 객원연구원.
⊙ 제14회 기술고등고시 합격, 인천시 도시계획국장ㆍ재무국장, 내무부 방재계획과장, 행자부
월드컵문화시민운동추진협의회 운영국장ㆍ지방혁신인력개발원 원장, 인천시 기획관리실장,
소방방재청 차장, 인천대 대학원 겸임교수 등 역임.
⊙ 現 소방방재청 청장.
월간조선 2010년 2월호 (기사 全文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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